젊은 약사들이 첫 번째 직장으로 많이 택하는 곳 중 하나가 병원이다.
나는 병원 취업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런 나도 병원은 경험 적당히 하고, 약도 적당히 다루고, 사회생활도 적당히 하는 아주 무난한, 모든 부분에 있어 딱 중간 정도의 특성을 가진 직장이라고 생각했다.
병원만이 가지는 특수한 분위기
병원은 일은 못하지만 성격은 착한 사람이 살아남기 힘든 곳이다. 일을 못하면 힘든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이게 무슨 소리냐?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태생적으로 일을 굉장히 잘하는 몇몇 인재들을 제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보면 신규로 들어갔을 때 실수를 안 할 수는 없다. 그건 병원이 아니라 어디나 그렇다. 신규가 실수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병원은 실수를 하면 안 되는 곳이다. 환자의 생명과 건강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실수 한번을 했을 때 그것을 처리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병원의 시스템은 틀리지 않는 것/최소화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꼭 신규가 아니더라도 인간이 하는 일이다 보니 가끔 에러가 발생할 수 있다.(하물며 기계도 실수를 한다. 기계가 한 실수를 걸러내는 것도 인간의 일이다.)
아무튼 이런 상황이다 보니 원내 약제부에는 기본적으로 싸늘한 공기가 맴돈다.
병원을 환자나 보호자로 가게 되면 약사들을 볼 일이 없는데, 어떤 류의 싸늘함인지 궁금하다면 대학병원에서 의사나 간호사들이 일할 때 자기네들끼리 하하호호 웃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된다.(드라마에서 말고)
간호사 태움 문제도 이런 것과 관련이 있다.(태움은 인격 문제이다. 다만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모독하는 행동이 지속되도록 용인하는 원내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임.) 전문의 따기 전에 교수한테 정강이가 남아날 일 없게 맞았다는 지인의 이야기도 추가해 보면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가지는 특수한 엄격함이 확실하게 있다고 생각한다.(도대체 어딜 가면 30살 먹은 어른이 일하다가 실수했다고 정강이를 발로 까일 수가 있단 말인가?)
일터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이다. 일은 참아도 사람을 못 참아서 퇴사하는 사람이 수두룩 빽빽이다. 그 사람들이 나약하고 참을성이 없어서 그랬을까? 하물며 학교 다닐 때 친구랑 싸워도 등굣길부터 마음이 불편한데, 신규는 나 빼고 모든 사람이 상사(선배)이다. 그리고 그 상사들이 모두 예민한 상태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지만, 아무나 버틸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약국이나 회사는 괜찮고 병원은 별로라는 말이 아니다. 회사도 별로고 병원도 별로고 그냥 다 별로다. 다만 갓 졸업한 약사가 많이 가는 곳이 대학병원이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작성해 보았다.
일반 회사와 달리 많은 대학병원에는 사학연금 제도가 있어 공무원처럼 오래 다니면 빛을 볼 수 있는 직장이다.
관련 글 : 병원약사가 최고인 이유
그 외에도 이런 장점이 있는 곳이 병원이 아니면 또 어디가 있을까 싶은 장점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신규 중 사학연금의 혜택을 누릴 만큼(10년) 오래 근무하는 약사가 극소수이다. 20사번은 10명인데 15사번이 3명인건 15년도에 병원 재정이 어려워서 3명만 뽑고 안 뽑은 걸까 아니면 뽑아놨는데 3명만 남은 걸까?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단점만 느껴질 수 있다. 누구나 지원할 수 있지만, 아무나 버틸 수 있는 곳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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