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지식을 요하는 직업들을 노동 강도 대비 가성비 있게 부려먹는 직장이 바로 대학병원이다. 건강보험의 제도적 문제 때문인지 사명감이라는 이름 아래 열정페이인지 모르겠는데 일개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만 느껴질 뿐이다.
물론...
"우후훗, 내가 다니는 직장은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주는 거야? 정말 이해를 못하겠네~"
라고 말하며 출근하는 직장인은 어디를 가도 없겠지만 말이다.
병원약사의 최대 단점은 당직이다.
병원약사의 최대 단점은 아무리 생각해도 당직이다. 당직이라고 하면 남들 쉴 때 자리를 지킨다는 뜻이 아닌가. 말 그대로 휴일에 출근하는 것이 당직이다. 당직이 적용되는 날은 모든 휴일로, 명절을 포함한다. 추석 당일, 설날 당일, 크리스마스 모두 당직을 피해 갈 수 없다. 병원의 당직은 한달에 1~5회이며(병원마다 큰 차이가 있다.) 평균은 월 3회 정도이다. 그러니까, 한달 8일의 주말 중 3일은 당직을 하는 셈.
당연히 모든 사람이 휴일 없이 주 7일 일하는 것은 아니고, 미리 당직 표가 나온다. 이런 당직 표를 짜는 사람은 약제부에서 보통 조금 불편한 상대로, 직위(짬)가 있는 선생님들 중 한 명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당직 표가 나오고 나서야 내가 언제 당직인지 알게 되는데, 설이나 추석 당일날 당직에 걸리면 부모님 댁에 가야 하는 사람들은 상당히 곤란해진다.(그래서 당직을 서로 교환하거나 사고팔기도 한다.)
돈 받으니까 참아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근데 수당 받고 일하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되나? 직장인들 야근해서 초과수당 받으면 기분이 좋은가? 돈 벌어서 좋은 사람도 있기야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흐흑.... 내가 이번 달에도 이렇게나 개고생을 했구나.' 하면서 눈물 흘린다. 나 역시도 안 받고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근무의 불규칙성 + 주말임을 고려했을 때, 대부분의 병원에서 당직수당은 높지 않은 수준으로 책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게 그냥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일을 최대한 많이 해서 돈을 벌겠다는 마인드로 살고 있다면 당직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그 시간에 그냥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그밖에도 교직원들을 마른걸레 쥐어짜듯이 부려먹는 (일반 회사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신박한 제도들이 많다. 나는 이런 것들을 제도화시켜놨다는 것이 가장 신기하다.
물이 고이지 않는 병원
단언컨대 졸업 직후가 인생에서 가장 해맑고 기운이 넘치며 긍정적인 때이다. 처음부터 탈주 닌자를 꿈꾸는 신규약사가 어디 있을까. 그것도 AI면접이니 뭐니 어쩌고 저쩌고 하며 어렵게 들어간 병원에서 말이다.(대형병원들의 채용시기는 주로 졸업 이전인 9-11월이기 때문에 약사고시와 자기소개서 쓰기를 병행해야 한다.)
4-5년 차 약사들은 다 어디론가 증발하고 신규들이 넘쳐난다. 구조상 신규임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에 완벽 적응해서 바로 일해야 하기 때문에, 마이너스 0.5인분을 해내고야 마는 신규에게 프리셉터는 화가 나게 된다.(평균보다 일을 못하는 사람은 어디에 가나 있어서 어쩔 수 없다.) 어차피 몇 년 후에는 지금 열심히 꾸중하는 프리셉터도, 꾸중 듣는 신규도 병원에 없을 확률이 높다.
'약사이야기 > 일하는 약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대생이 할 수 있는 알바는? (0) | 2022.02.08 |
---|---|
약대 졸업 후 진로(연봉/노동강도) (3) | 2022.02.02 |
약대 아싸(아웃사이더) 가능한가? (0) | 2022.01.26 |
회사 다니는 약사도 연수교육을 꼭 받아야 하는가? (2) | 2022.01.15 |
밤에 일하는 약사 : 병원 야간약사 (1) | 2021.12.25 |
제약영업의 고단한 현실 (1) | 2021.12.11 |
대학병원약사가 최고인 이유 (0) | 2021.12.04 |
대학병원약사 하면 안되는 이유 (0) | 2021.11.29 |
댓글